지중해의 분단국 키프로스 여행기

과거의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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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프로스는 한번 방문해 볼만한 나라다. 한국처럼 남북이 분단되어 있고, 기독교회사에 큰 이름을 남긴 나사로의 고향인 나라로 그를 기념하는 성당이 있고, 이방선교의 선구자인 바나바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리고 역사상 유래가 없는 ‘유령도시’ 파마구스타(Famagusta)시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거의 40년 넘게 비어있어 폐물이 돼버린 해변 호텔의 모습.

세계에 분단국은 3개국이다. 동서 냉전시대의 산물로 분단국의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라는 한국과 중국이고, 그리고 키프로스가 있다. 키프로스는 동서 냉전과는 상관없는 분단국이다. 어떻게 분단국이 되었을까. 종교 때문이다. 정확히 말을 하자면, ‘종교를 납치(hijacking)한 정치’의 산물이다.

지중해의 섬나라인 키프로스는 경기도만한 크기에 인구는 100만 명이 채 안 된다. 1960년 영국의 식민지에서 해방되어 독립을 했다. 그런데 주민의 80%가 그리스정교를 믿는 사람들이고 20%가 터키계 무슬림들이어서 건국 초기에 국정을 그리스정교 측과 이슬람측이 7대3으로 분담하는 걸로 하고 독립국가로 출발했다.

이후 1974년 군부에서 쿠데타를 일으키자 터키가 이슬람 측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군대를 상륙시켰다. 군사력이 압도적인 터키가 한 달 만에 쉽사리 국토의 3분의 1을 점령해 북쪽에 또 하나의 정부를 세웠다. 그리고 협상을 통해서 남쪽의 회교도가 북쪽으로 이동하고 북쪽의 그리스 정교 인들이 남쪽으로 이주했다. 평화적이었으나 고향을 등지는 사람들은 실향민의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6·25 한국전쟁 시 포로 교환보다는 훨씬 평화적이고 신사적(?)인 인구 이동이었다.

유령 도시 파마구스타

이 와중에 생긴 동네가 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유령도시 파마구스타다. 문자 그대로 완벽한 유령도시다. 한국으로 비교하면 정전으로 묶인 휴전선 안에 남아진 도시와 같다고나 할까. 40년간 해안의 호텔이나 숙박 시설에는 인적이 완전히 끊겨 건물은 낡아가고 주변은 갈대밭으로 변했다. 대부분 그리스계 사람들인, 법적 권리를 가진 원주인들은 열쇠를 품고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 기대하던 부모세대는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 열쇠를 물려받은 2세 자녀들이 여전히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국제무대에서 위상이 올라가고 경제적 형편이 비교적 좋은 터키는 시간이 자기편이라 생각하고 협상에서 느긋하기만 하단다.

우리를 안내한 크리스. 그의 손에는 40년 전 고향을 떠나며 가지고 온 자기 집과 공장의 열쇠가 들려 있었다. 저 철조망 너머 보이는 집이 자기네 고향집이라고 한다. 2003년부터 북쪽 방문이 가능해져 매월 한번은 이곳을 방문해 멀리서나마 바라고 간다고 하는 그의 눈에는 열망과 절망이 겹쳐져 있다.

바나바 성당 지하의 무덤. 관광객은 가끔 눈에 띄지만,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어 먼지가 쌓여 있다.

크리스는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열쇠를 이제는 자기가 차에 매달고 다닌다. 계속 터져나오는 그의 한숨소리를 들으면서 소유에 집착하는 인간의 심리가 실감이 난다.

남쪽으로 쫓겨난 그의 부친은 역시 사업에 성공하여 남쪽의 다른 도시에 호텔을 경영하다 자기에게 물려주고 돌아가셨다. 크리스는 여전히 부자다. 그러나 북쪽의 재산을 잊지 못해 이렇게 안달이다. 저 유령도시에 그 재산이 없었다면, 부자는 더 행복했을 것이다.

옆에 앉은 내가 더 답답해서 한마디 했다. “인류역사는 불행히도 전쟁역사다.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다 운명이다. 잊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처럼 사는 게 낫지 않을까” 말하니, “이래서 외국인들에게 얘기하는 것은 다 쓸 데 없다”며 혀를 찬다.

자기 집 안방까지 쳐들어 와 모든 것을 강탈한 날강도를 어떻게 사랑하느냐라는 외침이다. 양보할 수 없는 현실, 안타깝게도 이들의 한숨 소리는 쉬이 끝날 것 같지 않다. 이제는 서로 법적 소유권을 주장할 일도 없는 남북한의 통일이 먼저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40년 동안 비어있는 해변의 호텔들

그날 하루종일 필자도 크리스 못지않은 심정의 격동이 있었다. 문이 잠겨 들어가 보지 못한 바울 성당과 텅빈 바나바 성당을 참관하고, 또 그간 여행 기간 동안 수도 없이 접한 비운의 성당들 때문이었다. 북쪽의 성당은 거의 모든 문이 닫혀 있거나,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성례전을 집행했던 설비나 성인상은 철거되었다.

예술적인 벽화나 성인들의 조각상도 흔적 없이 지워져 있고 그 공간만 확연하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성당은 모두 이슬람 모스크로 개축되어 모스크를 상징하는 두개의 첨탑이  하늘을 찌르듯 높이 서 있었다. 남북전쟁의 상흔을 가장 역력하게 간직한 장소가 바로 성당이다.

황엽주 중동지역본부장.

잠시 스토리의 균형을 잡기 위해 북쪽 터키계 키프로스 사람들의 얘기도 들어보자. 며칠 후 북쪽의 니어 이스트 대학을 방문해 젤리아 카쉬만 교수와 마주 앉았다. 나는 북쪽 여행을 하면서 성당 때문에 난감했던 심정 얘기를 했다.

비운의 성당들

당연히 이슬람 쪽인 카쉬만 교수는(스스로 신실한 신앙인이 못된, 세속주의 무슬림이라고 했다) 남쪽에서 무슬림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긴 이야기를 이어갔다. 키프로스에서 무슬림은 소수요, 약자였다. 당연히 더 많은 핍박을 받았다.

‘대학살이 있었는데 아느냐’, ‘남쪽에서 회교 회당을 본적이 있느냐’ 묻는다. 아차 싶었다. 그동안 사실 남쪽 희랍정교 사람들의 얘기만 들었지 북쪽의 터키계 키프로스 사람들의 얘기는 듣지 못했던 것이다. ‘종교인들 사이에 진정한 대화는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것으로 대화를 마쳤다. 여기에 대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니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키프로스=황엽주 본사 중동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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