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불교, 실리 앞세운 생활형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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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는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 닮은 듯 다른 점이 많다’고 말한다. 과거 역사를 들여다보면 우리와의 유사점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은데도 말이다. 특히, 일본불교의 역사를 통해 살펴보면 한반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역사적 필연성을 갖고 있는데, 왜 그런 것일까.

현재 일본 최대 종교로서 일반 국민은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일본불교. 현재 종파 수만 60개가 넘고, 일본 내 사찰 수는 약 7만5000개에 달하며, 승려 수는 18만 명 정도란다. 전국적으로 불교 신도 수는 8470만 명, 30만여 개의 불상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인지 승려들에 대한 사회적 신뢰나 지위가 상당히 높은 것도 사실이다.

이에 본지는 일본 열도 최북단 홋카이도 아사히카와(旭川) 시에 위치한 일본불교의 대표적 종단 조동종(曹洞宗)의 말사(末寺)인 ‘미쓰덴지(密伝寺)’ 모리타 겐쇼(森田巌祥·75) 회주와의 만남을 통해 일본불교에 대해 개략적으로 알아보았다.<편집자주>

일본 역사서 ‘일본서기’에 따르면 불교가 일본에 처음 전래된 것은 고분(古墳)시대인 흠명천황 13년 552년. 하지만 이에 앞서 민간에 불교신앙이 전파된 시기는 538년 전후로 백제에서 건너간 사람들에 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바로 이 시기는 백제 성왕(523~553)이 집권하고 있을 때다. 당시 백제시대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제도가 일본사회에 영향을 끼친 점을 미뤄볼 때 이런 사실은 당연해 보인다.

일본 아사히카와 시에 위치하고 있는 일본 조동종 사찰인 ‘미쓰덴지(密伝寺)’ 본당의 전경.

일본에 불교가 정착하는데 크게 기여한 사람은 아스카시대(592~710) 스이코 천황의 조카인 쇼토쿠 태자(聖德太子·574~622)다. 당시 스이코 천왕 대신 섭정했던 쇼토쿠 태자는 서기 595년(스이코 천황 3년) 고구려가 파견한 승려 혜자(慧慈)와 백제승 혜총(惠聰)으로부터 일본 최초의 사찰인 법흥사(法興寺)에서 불교를 배운 인물로 유명하다.

쇼토쿠 태자, 일본불교 정착에 기여

그는 스승 고구려 승려 혜자의 가르침에 따라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불교를 국가 통치이념으로 채택했다. 포교를 위해 사재를 털어 나라(奈良)현에 호류지(法隆寺)를 지었고, ‘17조헌법’을 제정, 삼보(불·법·승)를 공경할 것을 명하고, 선악의 도리로 불교를 채택하기도 했다.

서기 607년 세워졌다 692년쯤 재건된 호류지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5층 목탑 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명한 사찰이 됐다. 특히, 호류지의 금당은 고구려 승려 담징이 벽화를 그렸던 곳으로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다.

이처럼 불교국가로 다지는데 절대적인 공헌을 한 쇼토쿠는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고, 관료제를 확립시켜 관료 서열인 관위(冠位) 12계층을 제정함으로써 천황의 지위를 확고히 다지기도 했다. 이러한 쇼토쿠 태자의 정치적 노력으로 인해 일본은 최초로 고대국가 형성의 틀이 마련된 셈이다. ‘천황’이라는 칭호 사용이 이 시대부터 법제화됐다고 한다.

이처럼 국가체제와 함께 성장한 일본불교는 당시 ‘나라(奈良)불교’로 불릴 정도로 확고한 사회적 지위를 가졌다. 일본불교가 호국불교로서 상당한 교세를 갖게 되자 삼론, 법상, 성실, 화엄, 율, 구사 등 6개 종파가 생겨나기도 했다.

특히, 헤이안시대(794~1185) 말기에 들어서자 호국불교로서 국가로부터 막강한 지원을 받아 번영과 호사를 누리게 되자 일본불교는 국가재정을 축내는 원인이 되고, 승려들도 세속주의에 빠져 승풍이 어지럽게 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개인적인 내면세계를 채워준 것이 호넨(法然·1133~1212)에 의해 널리 보급된 정토종이다. 이때 일본에 유행한 불교는 정토종뿐만 아니라 인도에서 발생하고 중국을 거쳐 유입된 선종도 있었다.

선종 또한 지나치게 세속화되자 불교 개혁이 일어난다. 정토종을 계승한 신란(親鸞)의 ‘정토진종’, 잇펜의 ‘시종(時宗)’, 니치렌(日蓮)의 ‘일련종(日蓮宗)’, 도겐(道元)의 ‘조동종(曹洞宗)’ 등이 잇따라 등장했다.

호국불교, 부패의 늪에 빠져

이런 역사적 배경과 관련해 모리타 겐쇼 회주는 “당시 도겐 선사에 의해 대중에 널리 보급된 선종 가운데 한 종파가 바로 지금의 조동종(曹洞宗)이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일본불교가 일본 민중에게 완전히 뿌리를 내리게 된 시기는 대개 12세기 말 가마쿠라시대(1185~1333)에 들어서부터다”고 덧붙였다.

일본에서 선종은 조동종뿐만 아니라 임제종, 황벽종 등이 있다. 이 중 조동종이 일본 선종 가운데 가장 큰 교단이라는 것. 현재 조동종은 일본 내 사찰 수가 1만5,000여 개, 신자 수가 700만 명이 이른다고 한다. 조동종의 총본산 사찰은 1244년 도겐 선사가 지은 ‘에이헤이지(永平寺)’로, 후쿠이현 에이헤이쵸에 있다. 해외에도 유럽, 미국, 하와이 등지에 9개 절이 있다고 한다.

모리타 겐쇼 회주가 불전 앞에서 경내 시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모습.

현재 조동종의 승려는 결혼도 하고 아이를 가질 수 있지만, 메이지시대(1868~1912)까지만 해도 승려들의 결혼을 허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사찰의 주지직은 스승에서 제자로 계승하는 방식이었다고 모리타 회주는 설명했다.

조동종의 승려가 되기 위해선 엄격한 수련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 일반적으로 승려가 되려면 도쿄 세타가야 구에 있는 종단 대학인 코마자와 대학(駒澤大学) 불교학과를 나온다. 보통, 출가(出家) → ‘토쿠도(得度·승려가 되기 위한 출가의식)’ → 총본사 사찰에서의 1~3년 간의 수행생활을 거쳐 스승으로부터 ‘덴포(伝法·일종의 계를 받는 의식)’를 받는다고 한다. 이런 절차는 일본불교에서 승려가 되기 위한 일반적인 수순으로 보면 맞다.

또, 일본 불교에는 보통 ‘혈맥(血脈)’이라는 스승과 제자의 계보가 있다고 모리타 회주는 말한다. 즉, 본인은 석가모니 부처로부터 88대 째가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본 선종 중 최대 종단 '조동종'

조동종은 사찰 주지의 아들이라고 해서 아버지의 절을 세습할 수가 없다. 주지가 되기 위해서는 출가(出家)해 토쿠도(得度)과정을 거친 자라야 된다. 이를테면 ‘쓰이세(瑞世·본산 절에서 1일 주지직 수행)’를 마치고, ‘주쇼쿠(住職·주지직 맡는 일)’, ‘신산(晋山·주지 취임식)’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현재 조동종에서 주로 사용하는 교리서는 도겐 선사가 중국 수행 후 돌아와 지었다는 불교사상서인 ‘쇼보겐조(正法眼蔵)’ 96권을 기본으로 하고, 이 내용 중 재가신도를 위해 발췌한 서책으로 ‘슈쇼기(修証義)’가 있다.

일본 불교의 특징은 대부분 한국 불교처럼 대승불교란 점이고, 사찰 내 조직이나 운영 면에서 일반 신도회가 재정이나 불사 등과 관련한 결정권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사찰 재산 등의 집행권이나 소유권을 신도회가 소유하고 있을 정도다.

주로, 회주나 주지의 종무는 1년에 8번 ‘다이한냐기토에(大般若祈祷会)’라는 법회에서 설교를 하거나 신도들의 장례식을 치러주고, 신도들의 기일 제사를 집전해 주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절에서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천도재 등을 치러주는 식의 운영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일본인 생활문화 중 이채로운 것은 바로 일본인들이 대개 특정 사찰에 불도로서 소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신도를 일본 말로 ‘단카(檀家)’로 부른다.

몇 해 전, 모리타 회주가 주지직을 자신의 아들에게 넘긴 ‘미쓰덴지(密伝時)’는 지금 종교법인으로 등록돼 있고, 조동종 총본산 에헤이지(永平寺)의 직속 말사로, 1935년 모리타 회주의 스승이 세운 절이라고 한다. 현재 이 절의 단카(신도)는 700여 가구란다.

미쓰덴지 불전에 놓여 있는 대형 목탁. 모리타 회주에 따르면 이 목탁은 통나무 원목을 그대로 깎아 만든 것이라고 한다. 가격을 말하자면 시가 1천만 엔(한화 1억 원 정도) 이른다고.

일본인 대부분 특정 사찰에 신자로 소속

수행철학에 관해 모리타 회주에게 묻자 그는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평상시의 마음이 진정한 도라는 뜻)’라는 말이 있지만, 하루하루의 삶과 생활이 중요하다. 좌선(座禅)과 독경을 하는 것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해 청소할 때나 밥을 먹을 때, 차를 마실 때, 바른 몸가짐, 마음가짐으로 행하는 것을 신조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사찰 경내를 항상 깨끗이 청소하고, 떨어진 낙엽이나 잡초를 핀셋으로 집어낼 정도로 정성들여 치우고 있다는 것이다.
 
또, 사찰의 연중행사 중 가장 큰 의례로는 조상을 모시는 양력 8월 ‘오봉(추석)’이고, 이어 춘분과 추분 때 드리는 공양이라고 한다.

모리타 회주는 매년 5월부터 10월까지 매일 새벽 6시 인근 주민 50여 명과 함께 하는 ‘라디오체조’를 지난 35년 간 하루도 빠짐없이 사찰 경내에서 진행해오고 있다고 말한다. ‘라디오체조’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리듬과 구호에 따라 맨손으로 하는 운동으로, 이는 일본사회에 하나의 건강문화 코드로 널리 정착됐다.

현재 일본불교 역시 불자들은 계속 감소 추세 중이라는 것. 이와 관련, ‘미쓰덴지(密伝寺)’ 역시 지방에 있는 만큼, 지역 인구 감소에 따라 신도 수는 자연히 줄고 있는 반면, 도시의 사찰은 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사실 전체적 종교 인구 현황을 보면 일본불자들 또한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모리타 회주는 밝혔다.

홋카이도=이건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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