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와 예수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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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응태 교수

지난 달 말,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교 캠퍼스를 산책하는 중에 모과가 떨어져 있는 것을 봤다. 나무 밑에는 몇 개가 더 여기 저기 흩어져 있었다. 모과는 울퉁불퉁 생겨서 귀여움을 받을 과일은 아니다. 사랑스러워서 폴짝 다가가서 냉큼 줍고 싶을 정도로 탐이 나는 과일은 더욱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학생들은 무심히 스치고 지나간다. 내게는 다행스럽게도 하나를 주울 수 있는 행운이 생겼다. 차 안에 모과를 보관하며 출퇴근을 하는데, 진하지 않은 은은한 향기가 차 안을 채우고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나 없으면 왠지 아쉬운 모과향이다.

12월에 들어서자 1년 동안을 몸살이 날 정도로 기다렸다는 듯이 크리스마스 캐롤이 후두둑 쏟아져 나온다. 날씨도 춥고, 전쟁 위기가 한반도를 둘러싸고 감돌고 있어서 심리적 냉기류도 크다.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의 피해는 한반도가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닐 수 있다는 불안감을 보탠다. 청년 실업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서 올해도 대졸자들의 마음엔 찬바람이 분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는 사정의 칼날을 세우면서 살얼음판 분위기를 자아낸다. 수갑을 차고 체포되는 장면이 매일 등장하는 뉴스를 보기가 부담스럽고 겁난다. 그런 중에 구세군의 자선냄비 등장과 딸랑이 방울 소리는 일말의 온기를 느끼게 한다.

차 안에서 크리스마스 도래를 알리는 캐롤을 들으면서 문득 모과와 예수그리스도는 상당히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모과를 닮은 예수그리스도, 예수그리스도를 닮은 모과라는 단상이 떠오른다. 모과의 삶과 예수그리스도의 인생 노정은 비슷하다.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과일은 모과다. 난로 위에 놓인 주전자에서 폴폴 수증기를 뿜어내면서 우러나는 모과차가 성탄절에 잘 어울린다.

첫째, 모과와 예수그리스도는 흰 눈이 내리고 영하로 온도가 뚝 떨어진 겨울에 어울린다. 몸이 춥고 마음도 을씨년스러울 때에 모과와 예수그리스도는 우리를 따듯하게 해 준다. 이들은 삶이 힘들지만 그래도 살아야 한다며 우리를 일으켜 세우고 생존의 힘을 준다.

둘째, 둘 다 못 생겼다. 기독교인은 예수그리스도를 모독한다고 생각하지 말지어다. 사실 기독교가 국교가 되기 이전 400년 정도의 기간에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피해 동굴에 숨어 살면서 벽에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그리스도를 그렸다. 그 모습은 고통에 일그러지고 피와 물이 아랫배에 모여서 배가 뽈록한 흉한 모습이었다. 십자가 처형 당시의 사실적인 묘사였다. 그런 모습이 초기 신자들에게 구원의 힘이 됐다.

요즘처럼 잘 생기고 멋진 옷을 입은 미남형 예수그리스도는 기독교 국교 이후로 생긴 이미지였다. 처참하게 일그러진 예수그리스도 이미지가 사라지고 국교 시대에 맞게 근엄한 왕처럼 변신을 했다. 가장 일그러진 흉한 모습의 인간 예수가 황제 그리스도로 변했다. 모과도 못 생겼다. 과일 중에 못 생긴 과일이 모과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그리스도와 모과의 외형은 유사하다. 그래서 모과는 크리스마스에 어느 과일보다도 잘 어울린다.

셋째, 안 보이는 듯하지만 정작 없으면 허전하다. 모과나무는 화려한 정원수들 사이에서 수수하게 때로는 외롭게 서 있다. 정원수가 아닌 과수이면서 정원에 떳떳이 서 있다. 정원수들이 남긴 공백을 모과수가 메꾼다. 나무와 이파리도 행인들의 시선을 끌만큼 멋있거나 화려하거나 매력적이지 않다. 그래서 평소에는 그냥 외면하고 지날 때가 많다. 그러나 모과나무가 없으면 뭔가 정원의 균형이 깨진 것처럼 허전하다. 세속화 물량화가 곳곳을 차지하는 시대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보여주는 빛과 소금의 상징이 아프고 후미진 곳을 메꾼다.

넷째, 한번 맛을 보면 새로운 멋을 발견하게 된다. 모과는 영양분이 풍부해 겨울철 과일로서 톡톡한 몫을 해 낸다. 모과에는 구연산과 비타민C, 당분, 칼슘, 사포닌, 철분, 칼륨 등이 풍부하게 들어가 있고, 플라보노이드라는 성분이 다량으로 함유돼 있어서 감기 예방, 피로회복, 가래, 기침 등의 증상을 완화시켜 주는 등 많은 도움을 준다. 소화효소 분비를 촉진시켜 주는 효능이 있어서 소화 기능에도 좋고,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하므로 숙취해소에도 효과가 탁월하다. 피부미용에도 효과가 좋다고 한다. 십자가에도 인생을 살찌우는 영적 자양분이 풍부하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는 지치고 고달픈 삶에 활력을 얻게 된다. 십자가는 삶의 윤활유가 된다.

다섯째, 너무 과하면 몸에 해롭다. 모과가 몸에 좋지만,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이, 탄닌 성분의 함량이 높아서 과도한 섭취를 하게 되면 변비를 발생시킬 수 있고 소변의 양이 줄어들 수 있어서 유의해야 한다. 신앙도 현실과 균형을 맞춰야 한다. 너무 지나친 신앙 열정이나 어긋난 해석에 따른 일탈적인 종교 심취는 삶을 혼란과 무지로 떨어뜨리는 오류를 범한다. 행복을 위한 신앙이 불행을 자초하는 비극으로 결말이 지어질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이성과 감성을 갖고 있다. 이 둘 사이에 균형이 맞춰져야 한다. 마치 밤과 낮의 교차와 균형이 우주의 신비로운 법칙이고 우리의 건강한 삶에도 필수적이듯이, 신앙과 현실도 조화를 이뤄서 생활 밀착형 종교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작년의 한국 인구 통계 조사에서 처음으로 종교인구(44%)가 비종교인구(56%)보다 적게 나타났다. 그 동안 종교인구가 중복 기재 혹은 부풀린 집계 등으로 인해 실질적인 인구 통계보다 많게 나왔다. 이제는 통계에서 거품이 빠졌고, 현대인들이 솔직한 자기표현을 하고, 또한 종교에 대한 매력을 덜 느끼게 되면서 종교를 멀리한 것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자주 봐도 질리지 않고, 있으면 안 보이는 듯하지만 없으면 허전한, 은은한 멋과 향을 풍기는 모과와 같은 신앙의 형태가 요청되는 시대다.

시베리아에서 건너 온 냉기가 전국을 강타한다. 몸이 절로 움츠러든다. 그러나 은은하고 훈훈한 모과차와 성탄절 종소리와 캐롤이 있어서 우리의 마음은 푸근해진다. 오늘따라 모과를 보면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떠올린다. 내가 나를 볼 때 겉모습은 모과를 닮았는데, 인격은 예수그리스도를 닮지 못한 것 같아서 괜스레 미안하고 어색하다. 모과차를 한 잔 마시면서 심기일전해야겠다.

조응태 교수 (선문대학교·종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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