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주인공인 사람은 청산 대상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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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영 교수

최근 적폐에 대한 뉴스가 연일 신문지상을 오르내리고 있다. 각 분야에서 적폐가 제기되고 이를 놓고 논박이 펼쳐지는 등 인터넷이 논쟁으로 뜨겁다. 문재인 후보가 적폐청산을 구호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적폐에 대한 논쟁은 대한민국의 하나의 시대정신이 된 듯하다.

‘적폐’의 사전적 의미는 쌓일 적(積), 폐단 폐(弊), 즉 ‘오랫동안 쌓인 폐단’을 말한다. 오랫동안 쌓인 폐단은 비단 정치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곳곳에 상존한다. 불완전한 사람이 모순된 삶을 지속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쌓이는 것이 적폐다.

불완전한 사상, 불완전한 마음, 불완전한 인간관계, 불완전한 관습, 불완전한 미래 등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불완전성(imperfection)의 연속이며 이런 불완전한 공동체는 불가피하게 폐단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인류의 삶은 적폐의 연속인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살아왔는데 되돌아보면 진정 원했단 것은 아닌 삶’ 이것이 바로 현대사회의 단상이다.

우리 사회의 폐단이 있다면 사회가 발전하면서 소속된 사람들의 합의를 통해서 장기적인 관점으로 자연스럽게 줄여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각종 ‘적폐 논쟁’들을 보며 심히 우려스러운 점은, 폐단을 부각하기 위해서 한때 우리 사회의 주인공이었던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청산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은 우리가 살아온 공동체의 일원이다.

현재 폐습으로 논의되는 제도도 한때 우리 사회의 발전을 이끌었던 견인차였을 수도 있고, 그 제도를 주도했던 인물이 한때는 우리 사회를 성장시킨 역군이었을 수 있다. 현재 시점에 맞지 않는다고 적폐로 규정하고, 공헌한 역사적 가치를 외면하고 폐기하려고 하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본다. 마치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보는 듯하다. 누가 누구를 어떤 기준으로 함부로 정죄할 수 있단 말인가?

삶의 주인공인 사람은 결코 청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한 시대를 맞아 중심인물로 등장해 자신의 책임을 다한 것이고, 시대가 지났으니 새 시대의 새 중심인물이 더 주목받게 되는 것이다. 책임을 맡은 중심인물이 그 시대상황 속에서 저지른 폐단은 아쉽지만 그것도 결국 우리 사회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감당해야 할 모순된 삶의 결과물인 것이다.

선을 향한 인류역사의 지속가능한 발전의 법칙은 투쟁, 제거, 청산이라는 단어에 있지 않았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화합으로 하나되는 지도자와 집단, 국가가 언제나 중심이 됐고 오랜 기간 삶의 중심에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따라서 지금 같은 전환기에는 일단 구성원들이 강한 유대감으로 하나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유대감 없이 적폐논쟁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화합하는 능력이 지도자의 요건이며 사회의 성숙을 가름하는 척도다. 누구도 사람을 심판할 권한은 없으며 누구도 적이 돼서는 안 된다고 본다.

부모는 자녀의 살 길을 열어주는 법이다. 인류역사는 이러한 ‘부모의 심정’을 가진 지도자가 인류를 자녀로 대하며 온갖 혼란을 수습하고 발전해 온 노정이었다. 모든 인류가 ‘한 가족’(one family)으로 어우러진 세상은 이 시대 불완전 삶을 지속하는 인류에게 등불이 되는 마지막 모토일 것이다.

진정으로 우리의 삶을 짓누르는 적폐를 청산하고 싶다면 먼저 인류가 ‘하나의 뿌리에서 출발한 한 가족이다’는 논리가 선행돼야 한다. 작금의 상황에서는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의 질문보다 ‘누가 구성원을 한마음으로 묶어서 공통분모를 끌어낼 것인가’ 하는 질문이 우선한다고 본다.

윤도영 교수 (선학UP대학원대학교·교회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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