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이방 선교 센터 ‘에베소’

세계 정신문명의 보고 '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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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에 있는 성요한 성당의 유적지.

기독교 역사에서 에베소는 안디옥과 더불어 바울의 3차에 걸친 이방 선교 선교활동의 중심지였다. 터키 이즈미르로부터 남서쪽 약 50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고대도시다.

예수 이후 37-42년 사이에 성령의 불을 받아 뜨거워진 기독교인들이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 선두에 바울이 있었고 로마로 압송되기 전에 3차에 걸친 선교 여행을 실시했다. 1차는 유대 땅에서 비교적 가까운 지역 300㎞의 거리 이내에서 했고, 2차는 멀리 1,000㎞가 넘는 곳으로 나갔다. 이방인 선교의 시작이요, 그 중심지가 에베소였다.

에베소에 특이한 것이 하나 있다.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부탁을 받고 성모 마리아를 이곳에 오게 해서 높은 산에 초막을 짓고 모셨다는 것이다. 성모 마리아와 함께 에베소에 와서 살면서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논의가 기독교 역사에 수천 년간 분분했었는데,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공식적으로 이곳을 성모마리아의 집이라 선언함으로써 논쟁을 중단시켰다는 안내문이 있다.

이 전설 같은 사실에 기초해서 거대한 성요한 교회가 세워졌는데, 오토만 제국 시대에 다 허물어지고 지금은 대리석 기둥들과 빈터만 남아 있다. 그 터가 참으로 넓고 거창하여 과거의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성모마리아 집이 있는 곳 에베소

에베소는 당시 터키 지방에서 가장 융성한 로마 도시였고 인구가 50만이 넘는 거대 도시였다. 이방선교에 관심을 가진 바울이 이곳을 찾은 것은 당연했고, 거기서 3년을 머물며 아시아의 7개 교회(라오디게아, 버가모, 사데, 서머나, 두아디라, 빌라델비아)를 세웠다. 바울이 한 도시에서 3년 선교를 한 것은 에베소가 유일하다. 그만큼 중요했고, 엄청난 고난을 겪으면서도 많을 성과도 거뒀다.

고린도 후서 1장에 당시의 그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죽을 지경으로 심한 고난을 받아 살 소망이 다 끊어지고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기분이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극도의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다.

요한계시록 2장에 보면 승천하신 예수님이 요한 사도에게 환상 중에 나타나 여러 교회에 대한 말씀을 하시는데 제일 먼저 언급한 교회가 이 에베소 교회인 것을 보아도 에베소 교회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현재 에베소의 유적지는 관광지로 분류돼 보호를 받고 있는데, 사도들의 성당들도 시간의 시련을 이기지 못하고 서 있는 기둥보다는 넘어져 깨진 대리석 기둥의 돌들이 더 많이 거의 2킬로의 거리에 널려 있었다. 야만인들이나 이슬람의 파괴에다 여러 차례 지진이 지나간 결과이기도 하다.

에베소 유적지는 관광 보호 지역

에베소와 인근의 도시 셀주크, 이즈미르를 둘러보고 드디어 아테네로 향했다. 바울은 배로, 나귀로, 때로는 걸어서 6개월 만에 도착했을 아테네를 나는 1시간에 날아갔다.

아테네 얘기는 파르테논 신전에서부터 시작하게 된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은 인류의 문화유산 1호라는 칭호에 손색이 없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2,500년 전에 벌써 그런 수준의 건축물을 세웠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상상력과 배경이 되는 사상, 건축의 기술, 예술 감각은 현대의 인류에게도 끝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어 놀랍기만 하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의 모습.

한편으로 복원 사업 또한 40년째 계속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멈춰버린 역사를 살아가는 현재의 그리스인들이 수수께끼 같은 인물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벌써 그런 엄청난 문명을 만든 사람들의 후예인데, 지금은 40년 전에 시작한 복원 작업이 아직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고, 언제 그것이 끝날지 아무도 모른단다. 지금의 한국 사람들이 이 사업을 맡았다면 10년이면 충분히 복원을 끝낼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복원 작업이 진행된다면 100년은 더 소요될 것이라고 한다.

세계 정신문명의 보고 ‘아테네’

민주주의가 너무 발전해 대통령 선거가 오리무중이고, 실망한 대중이 공산당 후보를 아예 선출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아테네는 아름다운 대리석 동상들이 가득했다. 수많은 아폴로들, 비너스들이 대담하게 벌거벗고 아름다움을 뽐내며 서 있다.

파르테논 신전 주위를 한 바퀴 하루 종일 돌면 대강의 아테네는 보는 셈이다. 사도 바울이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믿고 있는 신에 대해서, 내가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자랑스럽게 예수를 보낸 하나님을 설교하던 그 유명한 ‘아레오바고’가 파르테논 신전 바로 아래 있고, 제우스 신전, 첫 올림픽 경기장도 도보로 10분 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아테네에서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6시간 거리에 데살로니가가 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말씀이 전달된 동네다.

데살로리가에서 바울과 함께 길게 생각되는 인물이 하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알렉산더 대왕이다. 데살로니가는 당시 마케도니아 그리스에서 인구 20만에 달하는 큰 도시였다. 알렉산더는 이곳에서 병사를 모으고 함대를 만들어 동방원정을 준비했다.

해안에 세워진 동상도 작년에 마케도니아에서 본 것보다 더 멋있게 보였다. 감상에 젖어 보니 동방원정을 준비하던 그의 호령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항구에서 배를 움직이던 함대의 병사들의 분주한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세계 제국의 왕, 알렉산더

알렉산더는 남으로 이집트를 정복하고 동쪽으로 향하여 페르시아 그리고 인도의 서쪽까지 진격해 대제국을 건설했다. 헬레니즘 문명은 알렉산더의 정복으로 그리스 정신과 동방 정신이 융합한 범세계적 문명권이다. 희랍의 철학, 정신이 인도까지 뻗은 것이다. 지금 인도의 지식인들이 그리스 사람들처럼 다 말이 많고 철학자연 하는 것도 그때 그리스의 철학 정신에서 배운 효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알렉산더는 천재적 전략가요 정복의 왕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류의 평등 사해동포주의의 보편적 번영까지 생각한 인물이었다. 이 사람이 이런 인물이 되기까지의 성장 과정이 눈에 띈다.

알렉산더는 당대의 대표적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하에서 3년 반 동안 정치, 철학, 윤리, 수학, 기하학을 배웠다. 스승과 많은 대화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인문 세계에 대한 감각을 키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리테스에게서 배운 플라톤의 제자였으니 알렉산더는 소크라테스의 증손주 정도 되는 학생인 셈이다.

그리고 나서 아버지를 따라 전장을 누비게 되고, 18세에 이미 아버지 필립왕은 왼쪽을 맡고 자기는 오른쪽 날개의 군대를 맡아 동맹을 깨고 배신한 도시들을 쳐부수는 용맹으로 이름을 떨쳤다. 문무를 겸비한 지도자의 코스를 제대로 밟으며 성장한 것이다.

계속되는 정복 전쟁의 와중에서도 알렉산드리아라는 새 도시를 건설하여, 교육 문화의 중심으로 삼고 헬레니즘 문명을 동서에 전파하는 산실이 되게 했던 것은 그가 훌륭한 스승들로부터 인문 교육을 잘 받은 효과였다.

‘알렉산더는 철학자를 존경했다’

그는 전쟁을 하면서도 철학자들과 대화를 계속했고 존경하는 철학자들을 보호했다. 반기를 들었던 도시 테베에서는 도시를 다 파괴하고 주민을 다 노예로 팔아버리면서도(이는 당시 승전국의 권리요 관행이었음) 시인 핀타로스의 집은 파괴하지 못하게 했다. 어디 가나 문예에 공헌할 수 있는 인물을 찾아 대화하고 그들이 헬레니즘 운동에 기여하기를 바랐다.

데살로니가 해안에 서 있는 알렉산더 대왕의 동상.



아래는 아테네의 괴짜 철인 디오게네스를 만나 나눴다는 대화 한 토막이다. 알렉산더는 정복왕인 자기를 알아주지도 않고 찾아와 인사도 하지 않는 이 철인에게 기분이 좀 상해 있었던 듯하다.

알렉산더가 약간 거만한 자세로, “내가 알렉산더라는 사람이요” 하니 디오게네스는 심드렁하게, “나는 디오게네스요. 그런데요?” 하니, 알레산더가 “당신은 내가 두렵지 않소?” 했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전혀 기죽지 않고 물었다. “알렉산더 장군, 당신은 스스로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오?” 알렉산터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디오게네스는 “당신이 선한 사람이라면 내가 선한 사람을 두려워할 이유가 어디 있겠소”라고 대답했다.

이에 기분이 좋아진 알렉산더가 좀 뻐기듯이 한마디 했다. “나 알렉산더는 당신의 소원을 다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요. 소원이 무엇인지 말해 보시오” 하니 디오게네스답게 “나는 소원 같은 것은 없소. 그런데, 지금 장군이 내 앞에 서서 태양을 가리고 있으니 좀 비켜주면 감사하겠소”라고 말했다. 화가 난 알렉산더의 부하들이 그를 치려하자 알렉산더가 말리면서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라면 저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 정복왕의 기개가 무소유 정신에 무장 해제되는 순간이었다. 참으로 희화적이고 유쾌하기까지 한 대화다.


아테네=황엽주 본지 중동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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