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0년 간 한국 사회는 오직 경제 발전과 성장에만 매두몰신해 온 결과, 세대 간 정서적·문화적 유대 고리는 약해지고 갈등의 골마저 깊어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박치완(철학) 교수는 18일 한국외대 국가브랜드 연구센터와 문화체육관광부가 개최한 ‘한국의 정체성’이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이같이 밝혔다.
박 교수는 ‘한국인의 문화적 정체성: 해체와 재구성의 소용돌이’라는 주제의 발제에서 “진지한 사회적 성찰의 과정이 생략된 채 지난 반세기가 이어져 왔다”며 “이는 민족·문화·역사적 정체성과 사회공동체에 대한 학습과 전달에도 분명 장해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50년 동안 전근대-근대-탈근대의 과정을 삽시간에 겪었다”며 “워낙 빠른 속도의 변화라서 세대 간의 가치 충돌과 도시·농촌 간의 소득격차, 직업에 따른 소득불균형 및 불평등구조 등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발전과 성장이라는 단일 이념이 지난 50년 간 줄곧 대한민국의 하늘을 드리우며 일상 및 생활문화의 전변을 지배하고 있다 보니 사회공동체 의식의 고취와 윤리적 공공성, 문화적 창의성 확대에 대한 관심은 박소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외대 국가브랜드 연구센터와 문화체육관광부가 개최한 `한국의 정체성` 세미나 전경. |
박 교수는 “일제강점기로부터의 해방, 6·25 한국전쟁 이후 남북 관계에 대한 인식의 편차로 인해 기성세대 간에는 물론이고, 신세대들 사이에서도 그 거리가 전혀 좁혀들지 않은 채 그대로 유습되고 있다”며 “한국의 각 세대별로 ‘문화유전자’의 변형이 이뤄졌을 것이다”고 말했다.
특히 “3대가 함께 사는 가정에서라면 이를 누구보다 절실히 체감할 것이다”며 “세대 간 소통이 어려운 원인은 결국 세대를 대하는 철학이며 가치관이 다른 데 기인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2015년이라는 시간의 축과 한국이라는 지리적 공간의 축 안에서 모두가 동일하게 살아간다고는 하지만 필경 각 세대는 전혀 다른 세계 속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박 교수는 “글로벌 인재 육성, 글로벌 시장 개척이라는 미명 하에 국지(國志)는 가벼이 여기고 ‘세계사’를 중시하는 나라가 한국이다”며 “글로벌화에 의해 ‘지구상 인류의 대다수가 잊혀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 세계의 모든 국가가 문화마저 경제적 가치로 치환시키고 있기 때문에 문화재난 시대가 도래할 날도 멀지 않았다”며 “문화재난은 스스로가 로컬에 소속돼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거나 포기할 때 심화된다”고 말했다.
끝으로 박 교수는 “우리는 ‘글로벌’이라는 미명 아래 우리의 고유한 자산인 문화를 탈영토화(서구화·미국화·중국화)시키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며 “탈영토화 돼 가고 있는 우리의 문화적 영토를 공시적·통시적으로 재구성하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부산대학교 김유신(과학철학) 교수가 ‘한국의 정체성’을, 경북대학교 정정주(신문방송학) 교수가 ‘빅데이터 분석을 이용한 한국의 브랜드 이미지/정체성’을 주제로 각각 발제했다.
이와 관련, 이날 세미나를 주최한 한국외대 국가브랜드 연구센터장 김유경 교수는 “한국의 정체성 모색을 위해 민관산학을 아우르는 범국민적 노력이 필요하다”며 “그 학제적 논의의 시작으로 이번 세미나를 개최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현태 기자